출근할 땐 정장 입은‘단정한 나’, 퇴근 후엔 개성있는 옷차림의‘자유로운 나’…. 누구에게나‘여러 자아’가 있다. 저자는“인생이란 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면‘최고의 나’로 출전하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일터에서의 나’와 ‘퇴근 후의 나’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 믿었죠. 출근할 때마다 집을 나서며 “기자 곽아람으로 변신~”이라 주문을 외웠고, 퇴근하며 회사 문을 나서면서는 “본래의 나로 복귀!”라고 외쳤죠. 그런데 직장생활 20년 가까운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 중 대부분의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일터에서의 나, 퇴근 후의 나, 어느 쪽이 ‘진짜 나’일까요? 친구 관계라든가 부모 자식 관계, 직장생활이 아닌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또 다른 나’가 필요치 않나요? 홀로 있을 때 말고 ‘날 것 그대로의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있나요?
지난주 소개한 ‘알터 에고 이펙트’는 미국 멘털 코치이자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코치인 토드 허먼이 쓴 책입니다. 인생의 ‘경기장’에 나갈 때는 여리고 상처입기 쉬운 ‘날것의 나’를 대신 출전시키라는 것이 책의 핵심입니다. ‘부캐(副 캐릭터)‘라고들 하는 ‘대체 자아’ 발굴 및 훈련법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주로 ‘밥벌이용 자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인 셈이죠.
사무실로 배달된 신간 더미를 뒤지다 보니 이런 책이 있네요.
‘밥벌이의 이로움’이란 제목에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2019년만 해도 조직생활의 부조리함에 항거해 분연히 사표 쓴 경험을 담은 ‘퇴사 에세이’가 유행했었거든요. 이런 책이 나오는 건 아마도 코로나 영향이겠지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꼬박꼬박 월급 주는 직장이 소중하니까요.
심지어 부제는 ‘일어나자, 출근하자, 웃으면서.’. 저자 조훈희씨는 워킹맘 아내와 두 아들을 둔 30대. 네 번 회사를 그만뒀지만 결국은 다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군요. 그는 “회사에 한 번 길들여진 사람이 사직서를 쓰고 나와 혼자 돈을 버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며, 결국 다시 회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면서 “어느 조직이든 비슷하다.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야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훈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
‘밥벌이의 이로움’이라는 제목이 생경했던 건 소설가 김훈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김훈은 썼습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에 대해 생각하다 최근 정년퇴임한 회사 선배가 퇴직 인사차 동료들에게 보낸 메일을 읽어보았습니다. “기자 일은 정말 두렵고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사람의 밥벌이가 똑같지만 제 모든 걸 걸어서 겨우 해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글. 회사 생활에 적응 못하고 방황하던 사회 초년병 시절, “밥벌이의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호통치던 선배 목소리가 생생하게 묻어납니다. 지겨움도, 이로움도 결국 ‘무거움’과 동의어 아닐까요? 선배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청년이 서울 광화문에 자기 책상을 갖고 33년 취재하고 글 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은 선후배·동료, 그리고 독자들 덕분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로 감사를 표시한들 다 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저 역시 세상 물정 모르던 지방 출신 청년이었죠. 그런 천둥벌거숭이가 서울 광화문에 자기 책상을 갖고 아직도 글 쓰고 있는 것은 팔 할이 독자 여러분 덕이라 생각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